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이 보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바라보는 것 |지역 학부모 도슨트 강연 후기(구스타브 카유보트)

구스타브 카유보트 도슨트 수업 후기

오늘 도슨트 수업의 주제는 구스타브 카유보트(Gustave Caillebotte)였습니다.

솔직히 수업을 듣기 전까지 카유보트라는 이름은 모네나 르누아르, 세잔만큼 익숙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오늘 그의 작품과 삶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나니 카유보트는 단순히 ‘인상주의 화가 중 한 사람’이라고 설명하기에는 꽤나 흥미로운 인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히 오늘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그림 자체만큼이나 수업 마지막에 도슨트님이 읽어주신 문장이었습니다.

“우리는 쓸데없는 것들에 정신이 팔려있느라, 너무나 많은 아름다움과 의미를 흘려보내고 있다.”

그리고 이어서 이런 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

“오늘 이 순간이라는, 보물을 알아채지 못하고 말이다.”

마지막에는 이런 말도 덧붙여주셨습니다.

“이 시간 이후에는, 인상파 화가들처럼, 자연의 찬란함, 생의 찬란함, 별것 없어 보이는 일상 속에서 삶의 소박한 기쁨을 발견하는 여유를 가져보면 어떨까요?”

오늘 카유보트 수업에서 가장 오래 기억에 남을 말이 아닐까 싶습니다.

도슨트 카유보트
도슨트 카유보트

카유보트가 바라본 파리, 도시의 산책자

오늘 가장 집중해서 감상했던 작품은 〈파리의 거리, 비 오는 날〉이었습니다.

1877년에 그려진 이 작품에는 비가 내린 파리의 넓은 거리와 우산을 쓴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그런데 평범한 도시 풍경처럼 보이는 이 그림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상당히 독특한 시선이 느껴집니다.

당시 파리는 오스만 남작의 도시개선 사업을 거치면서 크게 변화하고 있었습니다.

좁고 복잡했던 기존의 도시를 정비하면서 넓고 곧게 뻗은 대로와 정돈된 건물들이 만들어졌고, 우리가 지금 파리를 떠올릴 때 생각하는 도시의 모습도 이 시기에 형성되었습니다.

카유보트는 이렇게 새롭게 변화한 파리와 그곳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림 속에 담았습니다.

그런데 카유보트의 그림을 보면서 특히 흥미로웠던 것은 사진을 보는 듯한 시선이었습니다.

당시에는 사진이라는 새로운 매체가 등장하면서 사람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 자체가 달라지고 있었습니다.

카유보트 역시 사진에서 볼 수 있는 듯한 과감한 구도와 원근감, 잘린 화면을 회화에 적극적으로 활용했습니다.

특히 비가 내린 거리의 바닥에 빛이 반짝이는 모습까지 그림에 담았습니다.

거창한 역사적 사건도 아니고 신화 속 장면도 아닙니다.

그저 비가 내린 어느 날의 파리 거리입니다.

그런데 카유보트는 바로 그 평범한 순간을 그림으로 남겼습니다.

고전적인 미술에서 ‘지금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카유보트의 작품을 이해하려면 당시 미술의 변화도 함께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인상주의 이전의 아카데미 미술에서는 역사, 신화, 종교처럼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주제를 거대한 화면에 담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하지만 인상주의를 비롯한 새로운 미술에서는 사람들의 시선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빛이 변하는 순간, 도시의 거리, 카페와 공원, 산책하는 사람들, 노동하는 사람들처럼 당시 사람들이 실제로 살아가는 모습 자체가 그림의 주제가 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카유보트는 그중에서도 특히 현대적인 도시와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래서 그의 작품을 보고 있으면 아름다운 풍경화를 보는 동시에 19세기 파리의 모습을 기록한 사진을 보는 듯한 느낌도 듭니다.

창가의 젊은 남자, 그리고 그 너머의 파리

카유보트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인 **〈창가의 젊은 남자〉**도 오늘 수업에서 흥미롭게 들은 작품입니다.

그림 속 인물은 창가에 서서 파리의 거리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관람객은 그의 얼굴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가 바라보고 있는 방향을 함께 바라보게 됩니다.

뒷모습 너머로 보이는 창밖의 도시 풍경이 자연스럽게 시선에 들어오는 것입니다.

이 작품에서 흥미로운 점은 사람과 도시가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림 속 인물은 도시를 바라보고 있고, 우리는 다시 그 인물과 함께 도시를 바라봅니다.

카유보트는 이렇게 도시의 풍경과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함께 그림에 담았습니다.

사실주의와 인상주의 사이에 있던 화가

오늘 수업에서 카유보트를 설명하면서 인상 깊었던 표현이 있습니다.

카유보트는 사실주의에서 인상주의로 넘어가는 어딘가에 있는 화가라는 것입니다.

그의 작품에는 현실을 구체적으로 관찰하고 기록하는 사실주의적인 특징이 강하게 남아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빛과 색, 순간적인 시선, 현대적인 구도를 통해 인상주의적인 새로운 감각도 보여줍니다.

그래서 카유보트의 작품을 보고 있으면 단순히 ‘예쁜 풍경’을 그렸다는 느낌보다는 그 시대의 현실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본 화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유럽의 다리〉에서 만나는 근대 도시

또 하나 기억에 남았던 작품은 **〈유럽의 다리〉**입니다.

처음 제목만 들으면 센강 위에 놓인 다리를 생각하기 쉽지만, 이 작품의 다리는 센강에 있는 다리가 아니라 생라자르역 주변의 철도 위를 가로지르는 다리입니다.

카유보트는 철도와 기차역이라는 새로운 도시 풍경을 그림 속에 담았습니다.

당시 사람들에게 철도와 기차역은 근대화된 도시를 상징하는 새로운 공간이었을 것입니다.

이 작품을 통해서도 카유보트가 얼마나 새로운 도시의 모습을 관심 있게 바라보고 있었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상류층 화가가 그린 노동의 모습

카유보트에게는 또 하나 특별한 점이 있습니다.

그는 상당히 부유한 집안 출신이었지만 당시 상류층 화가들에게서는 보기 드물었던 노동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적극적으로 그렸습니다.

대표적인 작품이 바로 **〈마루깎는 사람들〉**입니다.

세 명의 노동자가 바닥에 엎드려 마루를 깎고 있는 모습을 그린 작품입니다.

당시 살롱에서 받아들여지기에는 상당히 파격적인 주제였고, 실제로 살롱에서 낙선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 작품은 카유보트를 대표하는 중요한 작품 가운데 하나로 평가받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 이야기도 흥미로웠습니다.

카유보트는 자신이 살아가는 상류층의 세계만 그린 것이 아니라 자신과 다른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노동과 일상까지 그림의 중심에 놓았습니다.

그림만 그린 사람이 아니었던 카유보트

카유보트의 삶에서 또 재미있었던 부분은 그의 관심사가 굉장히 다양했다는 것입니다.

그는 그림뿐만 아니라 요트와 보트에 관심이 많았고, 요트 설계와 제작에도 관여했습니다.

또한 전문적인 원예가라고 불릴 만큼 정원 가꾸기에도 관심이 많았습니다.

친구였던 모네와 주고받은 편지를 보면 원예에 대한 두 사람의 관심도 잘 드러납니다.

우표 수집가이기도 했습니다.

카유보트가 수집한 우표들은 훗날에도 높은 평가를 받았다고 합니다.

그렇게 보면 카유보트는 단순히 하루 종일 그림만 그리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이 흥미를 느끼는 세상의 여러 모습을 직접 경험하고 관찰했던 사람이었던 것 같습니다.

화가이면서 인상주의 화가들의 든든한 후원자였던 사람

카유보트의 삶에서 가장 놀라웠던 부분은 오히려 그림보다 그의 역할이었습니다.

그는 살아있는 동안에도 인상주의 화가들을 적극적으로 후원했습니다.

카유보트는 어린 나이에 가족의 죽음을 경험했고, 자신의 죽음에 대비해 비교적 일찍 유언장을 작성했습니다.

그리고 세상을 떠날 때 자신이 소장하고 있던 인상주의 작품들을 프랑스 국가에 기증하도록 했습니다.

유언 집행자로는 친구였던 르누아르를 지정했습니다.

그가 소장했던 작품에는 피사로, 모네, 르누아르, 시슬리, 드가, 세잔, 마네 등 당시 인상주의와 새로운 미술을 이끌던 화가들의 작품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다만 당시에는 인상주의에 대한 반발이 강했기 때문에 그의 뜻대로 모든 작품이 곧바로 전시될 수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결국 국가가 받아들인 작품 가운데 일부가 먼저 전시되었고, 이 작품들은 오늘날 오르세 미술관의 중요한 컬렉션을 이루는 기반 가운데 하나가 되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카유보트 자신의 작품은 이 기증 대상에서 제외했다는 것입니다.

그는 경제적으로 그림을 판매해야 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자신의 작품을 적극적으로 판매하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생전에는 물론이고 사후에도 한동안 다른 인상주의 화가들보다 상대적으로 덜 알려졌습니다.

하지만 20세기 중반 이후 카유보트의 작품이 다시 주목받기 시작했고, 오늘날에는 현대 도시를 바라본 독특한 시선과 사진적인 구도로 재평가되고 있습니다.

카유보트의 작품이 다시 주목받기까지

카유보트가 세상을 떠난 뒤 그의 작품 일부는 가족이 소장하고 있었습니다.

그중 **〈뱃놀이〉**는 훗날 다시 세상에 공개되었고, 프랑스 정부가 국가 컬렉션으로 확보하면서 ‘국보(trésor national)’로 지정된 작품이 되었습니다.

카유보트가 세상을 떠난 지 130년이 되는 2024년에는 오르세 미술관을 비롯한 여러 기관에서 그의 작품과 컬렉션을 다시 조명하기도 했습니다.

한때 다른 인상주의 화가들보다 덜 알려졌던 카유보트가 오늘날에는 인상주의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화가로 다시 평가받고 있다는 점도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카유보트를 보며 아이들이 생각났다

오늘 수업을 들으면서 저는 의외로 아이들을 많이 생각했습니다.

아이를 키우다 보면 하루가 정말 빠르게 지나갑니다.

아침에 깨우고, 밥 먹이고, 학교와 유치원에 보내고, 학원에 보내고, 숙제를 챙기고, 책을 읽히고, 씻기고 재우다 보면 어느새 하루가 끝납니다.

그러다 보니 아이와 함께 있는 순간에도 머릿속은 자꾸 다음 일을 생각하게 됩니다.

‘이것 끝나면 밥 먹어야 하는데.’

‘숙제는 했나?’

‘내일 준비물은 챙겼나?’

아이와 함께 있으면서도 정작 지금 아이와 함께 있는 순간을 충분히 바라보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오늘 도슨트님이 읽어주신 문장이 더 크게 와닿았습니다.

“우리는 쓸데없는 것들에 정신이 팔려있느라, 너무나 많은 아름다움과 의미를 흘려보내고 있다.”

생각해보면 아이와 보내는 하루도 비슷한 것 같습니다.

아이와 걷다가 갑자기 작은 돌멩이를 발견하고 멈춰 설 때가 있습니다.

어른에게는 별것 아닌 돌멩이지만 아이에게는 그날 처음 발견한 신기한 무언가일 수 있습니다.

비가 온 뒤 물웅덩이에 하늘이 비치는 것을 보고 신기해할 수도 있고, 길가의 나뭇잎 색깔이 어제와 달라졌다고 이야기할 수도 있습니다.

어른에게는 너무 평범해서 그냥 지나치는 장면이 아이에게는 하나의 발견일 수 있습니다.

카유보트가 그랬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는 거창한 역사적 사건이나 신화만을 그림의 소재로 삼지 않았습니다.

비가 내린 거리, 창밖을 바라보는 사람, 기차역 주변의 풍경, 노동하는 사람들처럼 당시 사람들이 매일 마주하던 평범한 장면을 그림 속에 담았습니다.

평범해서 그냥 지나칠 수 있는 장면에도 충분히 아름다움과 의미가 있다는 것을 보여준 셈입니다.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이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바라보는 것

그래서 오늘 수업을 듣고 나니 아이에게 미술을 가르친다는 것에 대해서도 조금 다르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아이에게 유명한 화가의 이름을 많이 알려주고 작품을 많이 보여주는 것도 물론 좋은 경험일 것입니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필요한 것은 스스로 바라보고 발견하는 힘이 아닐까 싶습니다.

아이와 그림을 볼 때도

“이 그림 제목이 뭐야?”

“이 사람은 누구야?”

라고 정답을 알려주기보다는

“그림에서 뭐가 제일 먼저 보여?”

“왜 그렇게 생각했어?”

“그 사람은 지금 어디를 보고 있을까?”

라고 물어보는 것.

그렇게 아이가 자기 생각을 이야기하도록 기다려주는 것.

그것도 충분히 좋은 미술교육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특히 저는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는 것만큼이나 읽은 뒤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설명하는 경험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왔는데, 미술도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림을 보고 정답을 맞히는 것이 아니라,

‘나는 무엇을 보았는지’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

‘그림 속 사람은 어떤 상황일 것 같은지’

자신의 생각을 말해보는 것.

결국 중요한 것은 그림의 이름을 많이 아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자세히 바라보고 자기만의 생각을 만들어가는 힘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이와 함께 ‘오늘의 한 장면’을 찾아보기

그래서 오늘부터 아이들과 산책할 때 조금 다르게 걸어보고 싶습니다.

특별한 미술관이나 전시를 찾아가지 않아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비가 온 다음 날이라면 물웅덩이에 무엇이 비치는지 보고,

공원에 가면 어제와 오늘 나뭇잎 색깔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보고,

햇빛이 비치는 곳과 그늘진 곳의 색이 어떻게 다른지도 살펴보고,

길을 걷다가 재미있는 모양의 건물이나 창문을 발견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아이에게 딱 하나만 물어보려고 합니다.

“오늘 네가 발견한 것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건 뭐야?”

아마 그 질문 하나만으로도 평범했던 산책이 조금 달라질 것 같습니다.

카유보트가 남긴 것은 결국 ‘특별한 파리의 순간’만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그가 바라본 것은 그 시대 사람들이 매일 살아가던 평범한 하루였습니다.

그리고 오늘 도슨트님의 마지막 말처럼,

“자연의 찬란함, 생의 찬란함, 별것 없어 보이는 일상 속에서 삶의 소박한 기쁨을 발견하는 여유.”

어쩌면 아이를 키우는 지금의 우리에게도 꼭 필요한 것이 이런 여유인지 모르겠습니다.

아이에게 더 많은 것을 보여주려고 애쓰기 전에,

지금 우리 앞에 있는 것을 함께 바라보는 것.

더 많은 경험을 만들어주려고 하기 전에,

오늘 아이가 보여준 작은 발견 하나에 잠시 멈춰주는 것.

오늘 이 순간이라는 보물을 놓치지 않는 것.

오늘 카유보트의 그림을 보며 제가 얻은 가장 큰 배움은 미술에 대한 지식보다 어쩌면 이것이었습니다.

아이들과 보내는 평범한 하루도 언젠가는 다시 돌아갈 수 없는 한 장면이 될 테니까요.

그래서 당분간은 아이들과 걷다가 조금 천천히 걸어보려고 합니다.

아이들이 멈춰 서면 저도 같이 멈춰서서,

“뭐가 보여?”

하고 물어보려고 합니다.

어쩌면 그 순간이야말로 카유보트가 우리에게 알려준 ‘오늘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법’을 아이들과 함께 연습하는 시간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집에서도 미술관을 만나는 방법, Google Arts & Culture

오늘 수업에서 마지막으로 얻은 유용한 팁은 Google Arts & Culture였습니다.

세계 여러 박물관과 미술관의 작품을 온라인에서 감상할 수 있는 서비스라서, 수업에서 배운 화가의 작품을 집에 돌아와 다시 찾아볼 때 활용하기 좋습니다.

특히 작품을 크게 확대해서 세부적인 부분을 살펴볼 수 있기 때문에 아이와 함께 그림을 관찰하는 활동을 해보기에도 좋을 것 같습니다.

오늘 배운 카유보트의 작품을 하나 골라 아이와 함께 보고,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게 뭐야?”

“그림 속 사람들은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을까?”

“네가 이 그림 속에 들어간다면 어디에 서고 싶어?”

이렇게 이야기해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미술관에 직접 가지 못하는 날에도 그림 한 점을 천천히 바라보는 것.

그것만으로도 아이와 함께 보는 힘과 생각하는 힘을 키우는 시간이 될 수 있으니까요.

오늘 카유보트의 파리를 보고 돌아오면서, 저도 일상을 조금 천천히 바라보고 싶어졌습니다.

아이의 손을 잡고 걷다가 평소에는 그냥 지나쳤던 것 앞에서 잠시 멈춰보고,

아이의 이야기를 조금 더 들어보고,

오늘이라는 평범한 하루를 조금 더 오래 기억해보려고 합니다.

어쩌면 우리가 놓치고 있는 가장 아름다운 장면은 특별한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매일 반복하고 있는 평범한 하루 속에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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