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키우다 보면 아이가 심심해하는 순간이 있습니다.
“엄마, 심심해.”
저도 아이들이 이렇게 말하면 처음에는 바로 뭔가를 찾아주려고 했어요.
“책 읽을래?”
“그림 그릴까?”
“보드게임 할까?”
“이거 가지고 놀아봐.”
아이에게 재미있는 것을 계속 만들어줘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두 아이를 키우면서 조금씩 달라졌습니다.
요즘은 아이가 심심하다고 해도 바로 새로운 것을 제안하지 않을 때가 있어요.
그랬더니 생각보다 아이들이 자기들끼리 할 일을 잘 찾아가더라고요.
아이가 심심하다고 하면 바로 해결해주곤 했어요
아이에게 심심하다는 말을 들으면 부모 입장에서는 괜히 마음이 쓰입니다.
‘할 게 없나?’
‘내가 뭔가를 해줘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거든요.
특히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는 날에는 더 그렇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이 심심해하면 책을 꺼내주거나 그림을 그리자고 하거나 같이 놀자고 했어요.
아이들이 재미있게 지내는 모습을 보면 저도 마음이 편했고요.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는 아이들이 스스로 놀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조금 기다려봤더니 아이들이 알아서 시작하더라고요
어느 날 아이가 심심하다고 했는데 저도 해야 할 일이 있어서 바로 같이 놀아주지 못한 적이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아이가 그냥 가만히 있을 줄 알았어요.
그런데 잠시 뒤 책을 꺼내더라고요.
조금 지나서는 둘이 무언가를 가지고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고요.
그러다 어느 순간에는 자기들끼리 게임을 만들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조금 웃겼어요.
제가 계속 ‘뭐 하고 놀까?’를 고민하고 있었는데 아이들은 생각보다 쉽게 자기들만의 놀이를 찾아냈던 거예요.
그때부터 아이들이 심심하다고 할 때마다 바로 해결해주지는 않으려고 합니다.
아이들이 노는 모습은 생각보다 단순했어요
아이들이 꼭 새로운 장난감이 있어야 재미있게 노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집에 있는 장난감을 가지고 새로운 놀이를 만들기도 하고, 책을 보다가 이야기를 이어서 놀이로 만들기도 했어요.
종이나 그림 도구만 있어도 한참 그림을 그릴 때가 있고요.
보드게임도 꼭 원래 규칙대로만 하지 않습니다.
둘이서 자기들끼리 규칙을 바꾸기도 하고, 때로는 전혀 다른 놀이가 되어 있기도 합니다.
어른 입장에서는 ‘그렇게 해도 되나?’ 싶을 때도 있지만 그냥 두고 봅니다.
아이들에게는 그것도 재미있는 놀이니까요.
아이들이 싸우면 바로 해결해주고 싶지만
형제자매가 함께 놀면 좋은 점도 있지만 당연히 다툼도 생깁니다.
둘이서 놀다가 누가 먼저 했는지, 누가 더 많이 가졌는지 같은 사소한 문제로 싸울 때도 있어요.
예전에는 바로 가서 정리를 해주려고 했습니다.
누가 잘못했는지 판단해주고, 사이좋게 놀라고 이야기했어요.
그런데 요즘은 큰 문제가 아니라면 조금 기다려봅니다.
아이들이 서로 이야기하다가 해결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위험한 상황이거나 감정이 너무 커지면 제가 개입합니다.
하지만 사소한 다툼까지 부모가 모두 해결해줄 필요는 없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책과 보드게임을 쉽게 꺼낼 수 있게 해두었어요
아이들이 스스로 놀 수 있게 된 데에는 환경도 조금 영향을 준 것 같습니다.
아이들이 책을 좋아해서 책은 쉽게 꺼낼 수 있는 곳에 두고 있습니다.
그림을 그리고 싶을 때 바로 사용할 수 있도록 그림 도구도 너무 깊숙한 곳에 넣어두지 않고요.
보드게임도 부모가 꺼내줘야만 할 수 있게 두기보다는 아이들이 직접 가져올 수 있도록 해두었습니다.
그렇게 해두니 아이들이 필요할 때 알아서 가져옵니다.
저는 이것도 꽤 중요한 부분이라고 느꼈어요.
아이에게 ‘이걸 하고 싶으면 엄마에게 말해야 해’라는 환경보다 ‘내가 하고 싶으면 직접 꺼내서 시작할 수 있는 환경’이 조금 더 편한 것 같았습니다.
그렇다고 항상 혼자 놀게 하는 것은 아니에요
제가 아이들이 알아서 놀게 두려고 한다고 해서 아이와 놀아주는 시간을 줄여야 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저도 아이들과 책을 읽고, 보드게임을 하고, 이야기를 나눕니다.
아이들이 같이 놀자고 하면 함께 놀기도 하고요.
다만 아이들이 혼자 놀고 있거나 둘이서 재미있게 놀고 있을 때는 굳이 제가 들어가지 않으려고 합니다.
아이들이 저를 필요로 할 때는 같이하고, 자기들끼리 잘 놀고 있을 때는 조금 떨어져 있는 정도예요.
이렇게 하다 보니 저에게도 조금 여유가 생겼습니다.
아이들이 놀고 있는 동안 저도 제 일을 할 수 있고, 아이들도 자기들끼리 시간을 보낼 수 있으니까요.
아이가 심심해하는 시간이 꼭 나쁜 것은 아니었어요
예전에는 아이가 심심해하면 빨리 해결해줘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심심한 시간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닌 것 같아요.
아무것도 정해져 있지 않으니까 아이가 무엇을 할지 생각하게 됩니다.
책을 볼 수도 있고,
그림을 그릴 수도 있고,
장난감을 꺼낼 수도 있고,
형제자매에게 같이 놀자고 할 수도 있습니다.
아무것도 하기 싫어서 잠시 쉬어갈 수도 있고요.
그런 시간을 조금씩 경험하면서 아이들이 자기 시간을 보내는 방법도 배우는 것 같았습니다.
두 아이를 키우면서 저도 조금 덜 하게 됐어요
아이를 키울수록 부모가 더 많이 해줘야 한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습니다.
좋은 장난감도 사주고 싶고, 좋은 체험도 찾아주고 싶고, 아이와 재미있게 놀아주고 싶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오히려 제가 조금 덜 해도 되는 부분이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아이들이 자기들끼리 놀 수 있으면 그대로 두고,
책을 읽고 있으면 방해하지 않고,
둘이서 놀이를 만들고 있으면 지켜보고,
사소하게 다투면 조금 기다려봅니다.
물론 아이들이 항상 잘 노는 것은 아니고, 여전히 엄마를 찾을 때도 많습니다.
그래도 예전보다 아이들이 스스로 시간을 보내는 모습을 많이 보게 됐어요.
저희 집에서는 ‘심심해’가 놀이의 시작이 되기도 해요
아이들이 심심하다고 말할 때마다 새로운 것을 찾아줘야 한다고 생각했던 제가 지금은 조금 달라졌습니다.
가끔은
“뭐 하고 싶은지 한번 생각해봐.”
하고 기다려보기도 합니다.
그러면 처음에는 아무것도 안 하다가 어느 순간 책을 가져오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둘이서 뭔가를 시작합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아이들에게 생각보다 많은 힘이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제가 모든 놀이를 만들어주지 않아도 아이들은 자기들만의 방법으로 시간을 채워갑니다.
물론 모든 아이가 똑같지는 않을 거예요.
저희 아이들에게는 이런 방법이 비교적 잘 맞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앞으로도 아이들이 심심하다고 할 때마다 바로 새로운 것을 찾아주기보다는, 가끔은 그 심심한 시간을 조금 그대로 두려고 합니다.
어쩌면 그 시간 뒤에 아이들만의 새로운 놀이가 시작될 수도 있으니까요.
